프랑스 고유의 민속 음악으로 다양한 내용과 감정을 담긴 노래이다. 샹송은 11∼13세기에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세속적인 사랑 등을 가곡으로 만들어서 불렀다. 15세기에는 궁정적인 전아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16세기에응 프랑스 샹송의 성격은 변하여 서민적인 색채를 많이 띠었다. 17세기 초 파리에서는 세느 강에 새로 가설한 퐁뇌프 다리에서 거리의 가수가 정부의 고관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고, 따라서 퐁뇌프 다리는 샹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노래로 풍자하는 것을 샹소네라고 하며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여성의 경우는 샹소니엘)라고 불렀다.
현대의 샹송은 1900년 전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여성가수 이베트 길베르와 샹소니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예술가의 집합장소인 샤느와르라는 카바레를 중심으로 하층계급 사람들을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여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카지노 드 파리, 물랭 루주 등의 뮤직홀에서의 공연이 인기를 모았고, 30년에는 조세핀 베커가 '두 연인'을 히트시켰고,이 무렵에는 영화'파리의 지붕 밑에' '파리제'등 영화의 주제가인 샹송이 유행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는 현대 샹송의 개화기였다고 하나, 화려한 노래와 함께 세태를 반영한 어두운 노래도 많이 나왔고 리나 케티의 '기다리겠어요'가 평화의 기대를 담았다 하여 크게 히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감정을 담은 감상적인 노래가 유행하였고, 종전과 함께 '장미빛 인생' '사랑의 찬가' 를 노래한 에디트 피아프, '고엽'의 이브 몽탕등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되었으며, 50년 전후의 샹송계는 공전의 성황을 보였다. 샤를 트레네는 샹송에 재즈기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50년대 후반에는 Rock조의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전통적인 샹송은 그 기운이 꺾이기 시작하고 조니 아리디, 실비 바르탕 등이 로크조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샹송은 가사가 중시되며 이야기풍의 노래가 많다. 그리고 가사도 일상회화에서 쓰는 말이 사용되고 때로는 은어도 섞였다. 가수는 작사가·작곡가와 더불어 존중되고, 노래의 좋고 나쁨이나 음악적인 정확성보다 그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며 얼마나 개성적인 표현으로 청중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가에 대해 평가하였다. 또한 어떤 곡을 처음 불러 히트시키는 것을 크레아숑이라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러한 전통이 지켜져, 어떤 가수에 의해 크레아숑된 곡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기는 1930년대 중반에 프랑스영화 '파리의 지붕 밑'이 들어 오면서 부터였다. 이 때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을 뿐 대중화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더욱 확대시키면서 이들 노래를 적국의 것이라 하여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50년대 중반에 '고엽'이 크게 유행한 일이 있고 60년대 중반에는 J.그레코의 내한공연을 계기로 한때 샹송붐이 이는 듯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
이미 전에 소개 해드린 곡들도 있지만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옛날에 찍어 두었던 프랑스 사진과 함께 몇 곡 소개 드립니다.
엔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소렌자라"는 옛날에
극장 쉬는 시간에 많이 흘러 나왔던 곡이죠.
이 곡을 듣고 있으니 어릴 때 영화관에서 쉬는 시간에
이 음악을 들으면서 오징어 다리 뜯고 상영될 영화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