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란츠 리스트는 일찍부터 음악과 친해지고 9세 때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그 성공에 의해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또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우게 된다. 28세때 연주 여행을 통해서 유럽 각지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거장의 이름을 한껏 누렸다. 이 무렵이 되면서「초절 기교 연습곡」(독주곡)이나 「파가니니 연습곡」과 같은 기교적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1842년(31세)에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 감독·지휘자로 취임했으며, 창작 활동은 절정기를 맞아 2개의 「피아노 협주곡, 「전주곡」(관현악곡)을 비롯한 일련의 교향시 「파우스트 교향곡」(교향곡)등의 중요 작품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리스트가 음악사에 남긴 최대의 공적은 바그너와 함께 낭만주의 음악을 크게 밀고 나아간 점에 있다. 그의 인생을 다채롭게 채색하는 이 행동성은, 다소 화려하고 외면적이면서도 왕성한 설득력을 가진 교향시적인 작풍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리스트가 교향시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 쇼팽과는 다른 화려하고 거장적인 피아노 연주법의 개척도 이 성격에서 유래하고 있다.